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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제가 사회복지관에서 일할 때였습니다. 
대학을 갓 졸업해 사회복지 시설, 기관에서 일하는 초입 사회복지사들은 보통 여러 갈등을 겪습니다. 
일단 생각보다 월급이 매우 작고요....
더 큰 갈등은 대학에서 생각하던 것과는 꽤 다른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만나는 것보다 서류와 씨름하는 일이 많습니다. 또 일하는 기관의 이해하기 어려운 시스템들도 꽤 있습니다. 

서류와 씨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회복지기관, 시설에 예산을 주는 정부(지방자치단체)가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지도감독 기관에서는 일을 잘 하는지 못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서류밖에는 없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사회복지 시설, 기관입장에서는 서류를 잘 갖춰 놓아야 합니다. 시간이 없어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서류를 잘 정리하는 것 사이에서 갈등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서류에 시간을 더 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예산을 받을 수 있고 그래야 수혜자에게 더 많은 서비를 줄 수 있으니까요. 




지난 주 모 제약회사의 영업사원분들에게 강의를 했습니다. 몇 년 전에도 했던 일인데요. 그때와는 제 마음 가짐이 달랐습니다. 지금은 저도 다른 쪽에서 영업 일을 하고 있으니 그 분들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고 또 그분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을 해줄 수 있었을 거에요(제 생각뿐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약은 환자들이 먹지만 실제 특정 약을 구매하도록 하는 것은 처방권이 있는 의사입니다. 그래서 제약 영업은 직접적인 소비자인 환자가 아니라 의사를 상대로 영업을 합니다. 또 전문의약품은 환자를 대상으로 영업을 할 수 없게 법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영업사원들, 제약회사는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의사와 환자가 상의해서 약을 결정하는 상황이라면 환자를 이해하는 영업 방향을 가진 약을 더 선호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약을 선택할 때 환자들이 겪는 고민을 의사에게 설명해주고 그에 대한 답을 주는 것이죠.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라. 

기업의 입장에서는 아주 당연한 문장입니다. 그러나 비영리 단체에서는 조금 다른 의미가 됩니다. 사회복지기관의 가장 중요한 소비자는 수혜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만 사회복지기관에게 돈을 지불하는 소비자라는 의미로 보면 정부가 됩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제가 사회복지관에 근무하면서 우리 복지관을 이용하는 분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본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상급자, 정부, 지자체, 공동모금회, 삼성복지재단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소비자였습니다. 기관이 원하는대로 서류를 정리하고 어떻게 사업계획서를 써야 공동모금회나 삼성복지재단에서 사업비를 받을 수 있을까를 고민한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이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다섯명의 사회복지사가 200~300 가구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에서 서비스를 받을 사람은 늘 넘쳐났으니까요. 서비스의 질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돈을 주는 사람에게 잘 보여 더 많은 사업비를 따 오는 것이 서비스를 받을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요즘 한정호 선생님이 시리즈로 글을 쓰시고 계십니다. 국공립병원의 서비스 질이 낮은 실태를 지적하는 글들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국공립병원에서 이런 문제들이 생기는 이유는 
그분들에게 중요한 것은 환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에게 환자는 소비자가 아닙니다.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은 그 분들에게 별로 의미 없는 일입니다. 그보다는 노조가 더 중요한 소비자인 것이죠. 
환자들에게 아무리 좋은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해도 큰 일이 터졌을 때 환자들이 그들의 직장을 보호해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환자가 늘어나도 지금보다 봉급을 더 많이 받는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러나 노조는 그들을 보호해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잘 돌아가는 병원(기업이라도 해도 좋습니다)이라고 해도 10년, 20년에 한 번 정도는 위기에 처해질 것이고 개별 근로자는 직장을 잃을 수 있습니다. 평소 환자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보다 노조의 힘을 기르는데 더 노력하는 것이 이해가 됩니다. 또 노조는 매년 봉급을 더 받게 해줍니다. 
제가 사회복지관에서 수혜자보다 예산을 주는 정부나 사회복지 공동모금회, 삼성복지재단의 시선을 더 신경 쓴 것과 같은 이유일 것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사회복지사는 일을 더 열심히 한다고 봉급이 늘지는 않는다는 정도.... 

중요한 것은 당사자들은 자신들이 잘 못하고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사회복지관에 근무할 때는 수혜자의 이익보다 기관과 법인의 이익을 더 고민하는 것 같은 관리자들이 좋지 않아 보였습니다. 선배들을 이해하는데 3년 정도가 걸렸는데요. 사회복지사가 승진을 하려면 과장, 부장, 관장, 이사장에게 잘 보여야 하고 관장, 이사장은 기관의 존립을 고민해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야 그곳에서 근무하는 저 같은 사회복지사가 일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최근에 사회복지 공동모금회의 비리가 뉴스에 집중적으로 보도 되었습니다. 비리라고 해야 전체 공동모금회의 예산 규모에 비하면 아주 작은 액수일텐데요. 그래도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기관이기 때문에 일반 기업에 비해 더 엄격한 잣대로 지적을 받는 것 같습니다. 당연한 일이죠.
사회복지 공동모금회는 국민, 기업에게 후원금을 받아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나눠주는 일을 합니다. 직접 지원하는 일도 있지만 아주 많은 경우 개별 사회복지 시설, 기관들을 거쳐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실제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직접 만나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공동모금회 입장에서 소비자는 누구일까요? 수혜자가 아닙니다. 도움을 받을 사람들에 비해 후원해주는 사람은 늘 부족할 수 밖에 없습니다. 도와주는 일은 덜 신경쓰더라도 수요가 꾸준히 있지만 후원자들은 조금만 잘못하면 끊깁니다. 당연히 수혜자보다는 후원자, 기업을 더 신경써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그런 비리가 일어나겠느냐'는 말은 의미가 없습니다. 대기업이 협력업체인 중소기업보다 소비자를 더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인거죠. 



수혜자보다 위를 더 신경썼던 저 같은 사회복지사나
환자보다는 수간호사 눈치를 더 보는 간호사나 
개인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들이 진짜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도록 시스템과 문화를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할텐데요...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 정말 훌륭한 리더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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