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006년 보건복지부는 약제비 적정화방안이라는 새로운 약가 정책을 발표했다. 건강보험 지출 가운데 약제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29%이고, 증가세가 빨라 보험재정을 절감하기 위해 약제비 지출을 통제할 필요가 있다며 비용 대비 효용이 큰 약을 선별해 건강보험에 등재하겠다고 했다. 비용 대비 효용이 큰 약을 선별해 보험등재 하겠다는데 그 누가 이의를 제기하겠냐고 생각하겠지만 당시 이 정책은 몇 가지 비판을 받았다.

약제의 효능, 효과, 부작용을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 수 있는지와 왜 대상을 신약으로 한정했느냐가 그것이다. 정부는 신약이 상대적으로 고가이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신약은 효능, 효과, 부작용에 대한 자료가 충분치 않고 매년 등재되는 신약도 몇 개 되지 않아 전체 약제비에 끼치는 영향이 적다는 반론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복제약의 가격이 높기 때문에 복제약 가격을 일괄적으로 낮추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지난 99년 최초의 먹는 만성 B형 간염치료제가 출시된 후 이 약의 보험급여기준은 의사와 환자들에게 큰 불만을 사 왔다. 장기간 사용해야 함에도 2010년까지 급여기간에 제한을 두었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는 해당 약의 임상시험 자료 부족을 지적하며 기간 연장에 반대했다. 정부에서 요구한 것은 국내에서 제약회사 비용으로 진행된 임상시험 자료였는데 그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자료를 새로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 4~5년이 더 필요했기 때문에 이는 급여기간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비판하자 이런 자료를 요구하지 않으면 다국적 제약회사가 국내에서 자신들의 비용으로 임상시험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를 댔다.

지난 2007년에는 국내에서 개발한 만성 B형 간염치료제가 출시됐다. 그런데 이 약은 당시 6개월간의 투약기간과 6개월간의 추적기간 등 1년의 보험급여 기간을 인정받았다. 1년 뒤 추가 자료 제출 없이 다른 약과 마찬가지로 3년의 급여기간을 인정받았지만 지난 2007년 복지부가 다국적 제약회사에 요구했던 것과는 큰 차이가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 약은 2009년 부작용 논란에 휩싸이면서 결국 거의 처방되지 않는 약이 됐다. 부작용이 6개월 이상 복용한 환자에서만 나타난다는 것을 고려하면 부실한 허가과정이 부작용 논란을 키운 격이 됐다. 다국적 제약회사와 같은 기준으로 임상자료 제출을 요구했다면 아마 부작용 논란이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부작용 논란 이전에는 같은 시기 출시된 다국적 제약회사의 약과 매출이 2배 차이 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20배 이상 차이가 난다. 복지부의 배려(?)가 더욱 안타까운 이유이다.

올해 보험재정이 흑자로 돌아서면서 복지부는 흑자분을 보장성 강화에 대폭 사용했다. 그 중에는 비록 한의계 내외부 갈등으로 무산됐지만 한약 첩약급여 시범사업에 1년에 2,000억원씩 3년간 쓰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한약의 효과가 뚜렷하고 부작용이 적다면, 의학적인 방법과 비교해 비용-효과가 높다면, 한약 첩약 급여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한약은 아직 표준화도 돼 있지 않고 비용-효과를 평가한 자료도 미비하다.

올해는 건강보험재정이 흑자로 돌아섰다지만 의료기술의 발달, 인구 고령화를 고려하면 현재의 보장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꾸준한 보험료 인상이 필요하다. 더욱이 대선주자들이 앞다투어 보장성 강화를 외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압박은 더욱 클 것이다. 이런 시점에 한약에 대한 배려가 웬 말인가. 한약이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쓰일 수 있는 방법은 한약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더욱 엄격한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뿐이라는 점을 정부와 한의계가 명심하길 바란다.

2012-11-22 청년의사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www.docdocdoc.co.kr/news/newsview.php?newscd=2012112100031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