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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docdocdoc.co.kr/news/newsview.php?newscd=2013071100012 에 청년의사신문에 실린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에 의해 수정된 부분이 있어 블로그에는 원문을 싣습니다.

 

중증질환 보장성 확대. 소위 ‘4대 중증질환’부터 해서는 안 된다. 


각자의 영역에서 오랫동안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가수 이문세, 가수 겸 배우 엄정화, 개그우먼 안영미씨는 모두 갑상샘암을 앓은 암환자였다. 2009년부터 갑상샘암은 우리나라 암발생률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암이다. 주변에서, 유명인사 중에서 갑상샘암 환자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데 암은 우리나라 사망원인 부동의 1위이지만 갑상샘암으로 사망한 사람을 보기는 어렵다. 
국립암센터가 발표한 갑상샘암의 5년 생존율은 99.8%이다. 

몇 년 전 전신 3도 화상을 겪은 이지선씨의 책이 화제가 되었다. 스물세 살의 나이에 음주운전 차량과의 사고로 전신3도 화상을 입은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중환자실에서 있던 36일 동안 18명의 환자가 죽는 걸 밤마다 봤어요. 옆 커튼 너머로 사람이 죽어나가는 데도 나는 살기 위해서 먹어야 했고, 거기서 살아나왔어요.’

2년 전 석해균 선장으로 잠깐 이슈가 되었던 중증외상으로 인한 사망자는 연 3만명 정도로 사망자 수가 갑상샘암을 진단받는 환자와 비슷한 숫자이다. 전문가들은 중증외상 사망자의 1/3은 적절한 치료를 통해 살릴 수 있다고 본다. 바보가 아닌 이상 복부에만 세 발의 총을 맞은 석해균 선장이나 전신3도 화상을 입은 이지선씨 보다 갑상샘암 환자가 더 중증환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 뭐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보건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하는 공무원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지난 6월 26일 보건복지부는 ‘4대 중증질환 치료, 모두 건강보험으로 해결한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4대 중증질환은 암, 심장 , 뇌혈관, 희귀난치질환이다. 보건복지부가 말하는 4대 중증질환 우선 보장의 이유는 이렇다. ‘2011년 기준으로 건강보험 진료비가 연간 500만원 이상 발생한 상위 50개 질환 중 4대 중증질환 진료비가 61%를 차지’하고 그 ‘수가 159만명’에 이른다는 것이다. 2011년 사망통계를 보면 암, 뇌혈관질환, 심혈관 질환으로 사망한 사람은 전체 사망자의 47.5%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 말은 고액진료비 환자의 39%, 전체 사망자의 52.5%는 4대 중증질환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 왜 4대 중증질환의 보장성을 먼저 확대해야 하나? 

보건복지부의 이유는 이렇다. ‘4대 중증질환은 첨단 검사와 고도의 수술 및 고가의 항암제 등을 사용, 막대한 의료비를 초래하여 가정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건강보험의 한정된 재정 상황을 고려,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며 보장성을 넓혀가기 위해서는 우선순위에 따른 단계적 접근 필요’하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4대 중증질환의 보장성 확대에 시간이 걸리니 3년 한시로 ‘재난적 의료비 지원 사업’도 하겠다고 발표했다. 건강보험료 하위 20%의 저소득층은 수술 또는 입원 진료비가 100만원 이상 나왔을 경우 최대 2,000만원까지 지원하겠다는 것인데 기존의 지원사업과는 달리 비급여 진료비도 포함한다. 이 사업이 시행되면 저소득층의 말기 간경변증 환자의 간이식을 할 때 이런 설명을 해야 할 것 같다. ‘혹시 떼어낸 간에서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암이 나오면 정부로부터 최대 2,000만원을 지원 받으실 수 있습니다’ 

그럼 4대 중증질환이 그간 홀대를 받아 왔느냐. 그것도 아니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률은 63%이지만 4대 중증질환은 지금도 89.8%이다. 계획은 이것을 95.7%까지 올리겠다는 것이다. 건강보험료를 올릴 계획도 없다고 하니 다른 부분은 보장성이 후퇴하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보건복지부의 말처럼 막대한 의료비로 가정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할 일은 100만원~200만원의 치료비가 드는 초기암이 아니라 4대 중증질환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수천만원의 비용이 들어가는 다양한 질병과 재해에 대한 보장성을 확대해야 한다. 200~300만의 비용으로 고주파열치료술을 받을 수 있는 1기 간암보다는 4,000~5,000만원을 들여 간이식을 받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말기간경변 환자의 건강보험 보장을 확대하는 것이 옳다. 

지난 주 보건복지부는 4대 중증질환에 해당하는 환자단체들을 대상으로 간담회를 가졌지만 보건복지부가 찾아갈 곳은 4대 중증질환에 해당하지 않는 환자들이지 않을까. 이 정책으로 혜택을 받는 환자들이 적극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옳지 않은 일은 옳지 않은 일이다. 

보건의료를 잘 모르는 정치인들이야 4대 중증질환 보장성 확대를 구호처럼 외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강조한 것이 ‘4대’일까, ‘중증질환’일까. 그리고 이 구호를 그대로 시행하려는 공무원들에게 없는 것은 ‘영혼’일까, ‘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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