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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번역 출간된 리사 샌더스의 ‘위대한, 그러나 위험한 진단’이라는 책은 많은 부분을 할애해 신체검진(physical exam)이 점점 사라져가는 진료현실을 지적한다. 점차 첨단검사가 대체하고 있지만 시진, 촉진, 청진이 주는 정보의 많은 부분은 첨단검사가 대체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이것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진료시간이 특히 짧다고 알려져 있는 우리 현실은 의사의 시진, 촉진, 청진이 아니라 첨단 장비에 더 크게 의존한다. 환자들 역시 의사가 자신을 만지는 것보다는 기계 안에서 받는 검사를 더 선호하는 듯하다. 첨단검사는 의료 분쟁에서 의료인이 더 보호받을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주고 더 많은 비용을 청구할 수 있게 한다.

지난 10월 29일 정부는 ‘동네의원 중심의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를 추진한다고 발표했고, 대통령까지 국회 시정 연설을 통해 의료서비스 분야의 ‘선진화, 산업화’를 강조했다. 이에 대한 반발로 대한의사협회는 ‘의료제도 바로 세우기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반대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정부는 원격진료가 취약계층의 의료 접근성을 강화하고 만성질환자의 상시관리로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의료계는 의료분쟁 시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 고가의 원격의료 장비를 구입해야하기 때문에 비용효과적이지도 않다, 모바일 의료기기를 신뢰할 수 없다, 국토면적에 비해 의사수가 많아 접근성이 떨어지지 않으며, 의료제도에 큰 변화를 줄 수 있는 제도가 충분한 시범사업 없이 시행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처음에는 동네의원만을 대상으로 시행되지만 결국 대형병원에게도 허용될 것을 우려하고 있고 스마트 헬스기기를 제조 판매하는 대기업을 위한 제도라고 반대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원격의료가 결국 의료민영화로 이어질 것을 우려해 역시 반대하고 있다.

대학병원의 소위 ‘1분 진료’를 받는 환자들은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다. 의사는 가벼운 눈인사를 하고(때로는 이도 생략된다) 모니터 속의 결과를 보고 ‘결과가 좋습니다. 3개월 후에 다시 봅시다’라는 말로 진료를 마친다. 이런 경험을 한 환자는 의료계가 이야기하는 ‘결코 원격진료가 대면 진료를 대체할 수 없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도 검사결과를 전화를 통보해주는 의사를 흔히 볼 수 있다. 환자의 편의를 위해, 특이사항이 없었을 때 ‘전화진료’는 이미 특별한 일이 아니다. 올초 대법원은 전화진료 후 처방전을 발행한 것이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현재 주로 논의되는 스마트헬스는 환자가 집에서 스마트 헬스기기로 검사를 받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화상으로 진료하는 것이다. 스마트폰과 연결된 첨단 장비가 신체를 계측해야만 원격 진료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전화로 진료하는 것도 원격진료이고, 화상통화를 해도 마찬가지다. 반드시 스마트 헬스기기를 써야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도 정부와 민간 영역에서 진료목적은 아니지만 간호사가 방문해서 검사를 위한 채혈등을 하고 있으니 각종 검사를 방문간호사가 하고 영상으로 처방을 내리는 것도 가능하다.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격오지에 거주하는 노인들보다는 직장 때문에 병원을 가기 힘든 젊은 사람들이 원격 진료를 더 선호할 것이다. 아직 우리의 직장 문화는 20~30대의 젊은 직장인이 마음 편하게 병원을 오가기 힘들고 야간에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것도 어렵기 때문이다. 이들은 스마트기기를 익숙하게 쓸 수 있고 영상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에도 익숙하다. 지금의 60~70대는 원격의료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겠지만 10년 뒤 지금의 40~50대에게 원격의료는 어색한 일이 아닐 것이다.

원격의료에 따른 보안, 잘못된 판정에 의한 책임문제는 10년 전 영상검사 판독을 외부에 의뢰하기 시작할 때 똑같이 제기된 문제이고 스마트기기의 신뢰성은 앞으로 점점 개선될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의료계가 주장하는 반대이유가 10년 후에도 근거가 될 수 있을까?

진료는 의사와 환자간 인간적인 관계다. 일부 의사, 의료기관처럼 환자와 눈도 마주치지 않는, 모니터에 뜬 각종 데이터만으로 하는 진료, 환자의 지식 수순이나 성향에 관계 없이 물리적인 데이터가 같다면 같은 설명을 하는 진료에 환자가 익숙해진다면 원격의료를 반대할 명분은 사라진다. 아마 단기적으로는 ‘의료 민영화 반대’가 원격의료를 막는 더 효과적인 명분이 될 것이지만 지금과 같은 진료 문화가 바뀌지 않는다면 오래 버티기는 힘들 것이다. 결국 해야 할 것은 진료과정을 인간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사람냄새 나는 진료가 당연한 문화에서 원격의료가 일반화 되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원문 링크 : http://www.docdocdoc.co.kr/news/newsview.php?newscd=201311270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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