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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7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의 14% 가격 인하를 결정했습니다.

지난 6월 약제급여조정위의 결정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죠.

이번 인하로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의 한 달 가격은 약 260만원에서 약 220만원이 되었습니다.

지난 6월 약제급여조정위의 결정은 꽤 비중 있게 보도 되었는데요. 그 이유는 가입자인 시민단체가 약가조정을 요청해 반영된 최초의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치료제의 가격은 환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 특정 약을 먹는 환자들(또는 환자단체들)은 약가 인하를 요구하지 않았을까요?

 

2000년대 이후 약가 논란이 가장 심했던 약 가운데 하나가 만성B형간염치료제들입니다. 그러나 만성 B형간염환자들은 약가 인하를 크게 요구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만성B형간염치료제들의 매출은 글리벡보다 2배이상 많습니다. 단가는 작지만 환자수가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먼저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을 환자들이 얼마에 사 먹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환자들이 부담하는 약값이 크고 약값 인하로 얻는 혜택이 크다면 당연히 약가 인하를 요구할 수 있을 테니까요.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 상당수는 글리벡을 0원에 먹습니다. 공짜로 먹는다는 것이죠.

일반적으로 먹는 약은 보험적용이 된다면 환자가 약값의 30%를 부담합니다. 나머지 70%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합니다.

그러나 항암제는 중증질환등록사업(암등록사업)의 적용을 받아 환자가 10%를 부담하고 90%를 국민건강보험이 부담합니다. 또 암등록사업은 올 12월부터 환자가 5%부담, 국민건강보험 95%부담으로 바뀔 예정입니다.

 

글리벡은 수 년간 백혈병환우회와 제약회사, 정부의 다툼 끝에 환자부담금을 제약회사에서 지원해주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그래서 환자가 부담하는 10%도 제약회사가 부담합니다. 환자들이 공짜로 약을 먹는 이유입니다.

 

즉 글리벡의 가격인하는 대부분의 환자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이 없습니다. 뉴스에서의 관심과는 달리 대부분의 백혈병 환자들은 이 소식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위에서 모든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들이 이 혜택을 받지는 않는다고 썼습니다. 그 이유는 이 혜택은 보험적용을 받는 환자들에게만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보험적용을 받지 못한다면 약값의 100%를 환자가 부담해야 합니다. 이 분들은 약가 인하 소식을 조금 반겼을 것입니다. ‘조금만 반긴 이유는 총 치료비에서 이 혜택이 주는 영향이 작기 때문이고 같은 병을 앓고 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보험적용을 못 받는 환자들로서는 억울함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분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보험적용을 받는 것입니다.

 

 

만성B형간염치료제들은 만성질환 환자가 먹는 약 가운데 가장 비싼 약에 속합니다.

국민건강보험적용을 받더라도 가장 비싸게 약을 먹는 분들은 348,072의 약값이 듭니다(바라크루드0.5mg+헵세라둘 중 하나만 급여. 급여 되는 약도 환자 부담이 약 70%). 이 비용은 글리벡의 환자부담(실재로는 제약회사가 부담하지만) 10%인 월 26만원보다도 많습니다. 가장 비싸다는 표적항암제보다 비싼 것이죠.

가장 저렴한 약을 드시는 분은 30일 약값이 29,295원입니다.

 

일반적인 경우를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요즘 B형간염환자들이 가장 많이 쓰는 약인 바라크루드0.5mg의 한달 분 약값은 아래와 같습니다.

보험가  :  58,590

비보험가  :  195,300

 

이 약 가격을 10% 인하했을 때 환자들의 이익은 이렇습니다.

 

보험적용 받을 때  :  5,859

보험적용을 받지 못할 때  :  19,530

 

다른 공산품과 마찬가지로 어떤 제품의 가격을 10% 내리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이 보는 이익은 월 6천원이 채 안됩니다.

 

하지만 보험적용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보험적용을 받았을 때 얻는 이익은 이보다 훨씬 큽니다.

     월 136,710…. (약값의 70%)

 

환자들이 약가 인하를 요구하는 것이 나을까요.. 보험적용 확대를 요구하는 것이 나을까요?

 

보험적용이 되는 약과 그렇지 않은 약은 곳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본인부담상한제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환자가 부담한 의료비의 상한을 두고 소득에 따라 연 의료비가 각각 400만원, 300만원, 200만원이상이면 초과되는 돈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모두 부담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계산하는 금액은 보험적용이 되는 것 뿐입니다.

300만원이 드는 항암제를 쓴다면 보험적용이 되는 소득 하위 50%인 환자는 연간 200만원( 167천원)만 내면 되지만 보험적용이 안되는 환자는 3,600만원을 내야하는 거죠.

중증질환등록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암 등 중증질환이 있는 환자는 치료비의 10%만 내면 되지만 보험적용이 되는 것만 해당됩니다. 보험적용이 되느냐, 안되느냐는 고액의 치료비가 드는 환자일수록 매우 중요한 문제인 것이죠.

 

 

상식적인 환자단체라면 약값의 인하보다는 보험적용 확대를 요구하는 것이 낫습니다.

물론 둘을 함께 노력하는 일이 대부분입니다만 솔직히 환자 입장에서는 약값이 비싸도 보험적용 되는 것이 더 좋습니다.

 

건강보험재정을 관리하는 보건복지부로서는 약값의 인하를 조건으로 보험급여기준을 넓히는 일이 많습니다.

보험기준이 넓어지면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약을 먹지 못 했던 환자들도 약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매출은 늘어납니다. 제약회사는 보험기준이 넓어지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집단입니다. 약값이 부담되어 약을 먹지 못하던 환자들이 약을 사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험기준이 넓어지면 매출은 늘어납니다.

보건복지부는 매출이 늘어나기 때문에 약가를 깍는 것이구요.

 

보험급여 기준이 항상 합리적이면 환자들이 이런 고민을 하지 않겠습니다만 보험급여기준은 항상 환자와 의사, 제약회사의 기준에 못 미치기 마련입니다.

특히 새로 나온 약은 정부 입장에서는 효과가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제약회사는 그 정도면 충분한 증명이 되었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대안이 없는 치료제라면 환자입장에서는 일단 써 보고 싶죠.

 

또 객관적으로 의학적 타당성이 있다고 해서 모두 보험적용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환자가 너무 많다고, 약값이 너무 비싸서 보험이 안되는 것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모든 초음파 검사는 보험적용이 되지 않습니다. 산부인과에서는 임산부에게 정기적으로 초음파 검사를 하는데요. 이것이 보험적용이 되지 않습니다.

암환자가 치료 경과를 보기 위해 초음파를 찍어도 보험적용은 안됩니다.

(초음파 검사는 2013년 보험적용 예정입니다)

또 치과치료 중에는 일상적인 치료이지만 보험적용이 안 되는 항목이 무척 많습니다.

 

 

물론 약가 인하로 절감되는 국민건강보험재정이 해당 약의 보험급여확대에 쓰인다면 환자들도 약가 인하를 강하게 요구하겠습니다만 국민건강보험의 지출이 질환별 총액 기준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정리하면

환자보험급여 기준이 넓어지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가격 인하는 되면 좋지만 안 되도 큰 문제는 없다.

제약회사보험급여 기준이 넓어지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가격 인하는 매우 나쁜 일이다.

정부보험급여 기준이 넓어지면 건강보험지출이 늘어난다(재정을 걱정해야하는 입장에서는 나쁠 일이다). 가격 인하는 매우 좋은 일이다.

의사 – (시술과 약값은 다르지만 약만 이야기하면) 보험급여 기준이 넓어지면 좋다. 약값 인하는 되면 좋지만 안 되도 큰 문제는 없다.

 

현실적으로 환자단체가 약값 인하를 요구할 이유가 별로 없습니다. , 잘못을 떠나 시스템이 그렇다는 것이죠. 결과적으로 약값 협상은 같은 목소리를 내는 환자, 의사, 제약회사와 그들과 다른 입장인 정부와의 싸움이 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다른 편가르기를 원한다면 시스템을 바꿔야겠죠

 

어떻게 바꿔야 할까요? 그걸 알면 제가 이러고 있지 않겠죠…. -_-






 

댓글
  • 프로필사진 마바리 어떻게 바꿔야 할지 아는 분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근데, 아는 사람이 없다는...-.-; )
    2009.08.31 08:16
  • 프로필사진 윤구현 이런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의외로 없는 것 같아요... 2009.09.07 15:01 신고
  • 프로필사진 한숨만 아직 치료단계는 아니라 정기 검사만 받고 있습니다만 이런 내용 볼때마다 참 힘이 빠지네요...

    아픈것도 서러운데 치료비용까지 차별을 받는다니 ㅠㅠ
    2009.09.05 11:48
  • 프로필사진 윤구현 네. 사실 B형간염치료제의 보험급여 제한은
    다른 만성질환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종종 암환자보다 지출이 더 많아지기도 하는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2009.09.07 14:58 신고
  • 프로필사진 아... 흐흑.. 보험기간이 곧 만료되는데 한달에 20만원씩 꼬박꼬박 나가야될걸 생각하니..ㅠㅠ
    평생 어찌 이러고 살지 막막하다..
    내가 전생에 죄를 많이 지었는가보다. 그래도..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건 아니지 않는가...ㅠㅜ
    흐흑...
    2009.09.05 18:44
  • 프로필사진 윤구현 제가 10년 전 쯤에 한달에 12만원씩 약값을 썼거든요...

    그 마음 잘 알죠.. -_-
    2009.09.07 14:59 신고
  • 프로필사진 작은이 일단 전염병이라는 것 때문에 나서서 자신을 알리기 어려워 하지 않을까요? 2009.09.11 20:23
  • 프로필사진 윤구현 B형간염에 대해서라면....
    맞는 말씀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만든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권고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UN에서 각 나라의 장기 인권과제를 정리하도록 권고해서 만든 것으로

    정부에 이러한 인권문제를 해결해야한다고 권고한 것인데요. 여기에 질병으로 인한 차별이 세 가지 나와 있습니다.
    에이즈, 한센병(나병), 그리고 B형간염으로 인한 고용차별입니다.
    최소한 한국에서 B형간염은 가장 대표적인 인권문제로 지적되고 있어요... 그 만큼 심각하다는 뜻이고 그 만큼 당사자들이 나서기 힘들다는 거죠...

    그러나..
    의료비 문제는 다른 질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환자들이 약가 인하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별로 없는 거죠..
    2009.09.12 11:2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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