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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꽃말 - 황지우

윤구현 2009. 9. 9. 18:54
며칠 전 메일에 박노해 시인의 '사라지는 힘'이라는 시를 함께 보내 주신 분이 계셨습니다.
답장을 보내는 김에 저 역시 한 편의 시를 보내드렸죠.
요즘 들어 문득 생각나는 시입니다.
황지우 시인도 20년 전에 쓴 이 시가 다시 떠오르는 일을 겪으셨구요....



꽃말

 

식물학 교수 朴斗植(48)重病이라 했고,

의학협회 회장 李海萬(57)는 단순히 生理的이라 했다.

우려스럽다고 하는가 하면

우려할 만한 일이 아니라고도 했다.

민영방송 에므비씨 기자는 명륜동 대학가 앞 상인에게

마이크를 들이댄다.

푸른 안개 자욱한 春季의 캠퍼스를,

敵陳에서 敵陳으로

보여준다. 노란 가래침을 뱉는 개나리꽃.

가정주부 정숙씨(34) "불안해요"라고 말했고,

택시 기사 상훈씨(42)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

걱정된다고 했다.

누르기만 하면 스테레오 타이프 카세트테이프에서 말이 나왔다.

신문이 말하는 視界제로에 대해

치안본부는 절대로 고문한 사실이 없다고 발표했다.

고통의 배기통이 콱 막힌 버스가 급정거했다.

급격한 우회전은 승객의 머리를 좌경화시킨다는 걸 몰라요?

기회에 민감하다는 下馬評을 받고 있는 한 온건론자는 말했다.

<중심의 상실>을 쓴 예술사학사자 세들 마이어씨는

나치협력자였다.

4.19세대, 정부 여당 관념조정부장 金益達(44)

수유리 묘소에 헌화했다. 대리석 속의 상한 이름들.

상채기에서 꽃잎을 밀어내는 진달래.

상흔은 치유를 위해서 있다는 말로 그는 기념사에 가름했다.

그는, 정치적 위생관념을 강조했고

理性을 강조했다. 비위생적인 것에 대한 대안은 주문제 식단이었다.

이성의 기념케이크 속에 방부처리된 이스트.

살아 있는 것은 모두 보균자였다.

주한 미군 사령관 스튜어드씨의 '들쥐' 발언은 사실과 다름이

공식적으로 밝혀졌고,

한국인의 의식을 盜掘, 의식의 고고인류학자 李言榮(52)

일본 독자들이 더 좋아한다. '오프 더 레코드'를 요구하고,

한국인은 누르면 눌린다고 누군가 말했었다.

보다 의심스러운 것은 배후였다.

불타는 부산 미문화원의 배후에 구경꾼들이 몰려들고

대다수의 다수는 구경꾼일 뿐이었다.

액션, 스펙타클과 서스펜스. 개봉박두. 이게 현대 한국정치사다.

미국무성에서는 논평을 거부했다.

다만, 20일자 사설이 '希望', '獻身', '사랑'. '우정'

꽃말에 '反共', '親美', '합의', '단언'이라는 흰 팻말을

박았다.

자물쇠에 꽂힌 열쇠, 꽃말.

 

-       황지우…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오늘의시인총서 21)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황지우 (민음사, 19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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